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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회 무역의 날 특집] 역대 대통령 축사로 본 한국무역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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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6 111

[58회 무역의 날 특집] 역대 대통령 축사로 본 한국무역 변천사

‘무역의 날’은 민간 주관 행사 가운데에서도 대통령이 매년 참석하는 최고 권위의 행사다. 명칭과 주관기관, 날짜는 시대적 상황에 맞춰 변화했으나 무역의 날 기념식에 대통령이 참석하는 관례는 정권의 변화와 상관없이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건국 초기 피폐화한 국가 경제를 국민과 기업 정부가 혼연일체 되어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대한민국이 10대 강국으로 부상한 배경의 핵심은 수출에 있었다는 점을 각인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은 행사장에서 축사를 했으며, 대통령의 축사는 당해 연도의 수출 성과를 정리하면서, 앞으로 미래의 대한민국 무역의 발전상을 제시해왔다는 점에서 귀중한 역사적 자료 가운데 하나다. 

1964년 1회부터 2020년 57회까지 대통령들은 축사를 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많은 무역의 날 축사를 한 이는 단연 박정희 대통령이다. 서독 출장으로 인해 장기영 부총리가 대독한 1회부터 15회까지 축사를 냈다. 다음으로 전두환 대통령이 8회(17~24회)를 기록했으며, 대통령 임기가 5년 단임제로 정해진 뒤부터는 노태우(26회는 해외순방과 겹쳐 강영훈 국무총리가 대신함)?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이 각각 5회의 축사를 했다. 임기 중 자리에서 물러난 박근혜 대통령이 3회, 최규하 대통령이 1회를 했다. 대통령 직무수행을 했던 황교안 국무총리도 1회의 축사를 했다. 대통령들의 무역의 날 축사 가운데 시대별로 중요한 발언을 요약해 정리했다.


▲수출 6000억 달러 달성에 성공한 2020년 제57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수출유공자 
포상을 한 뒤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1964년 수출 1억불
1977년 수출 100억불
1986년 첫 무역흑자
1995년 수출 1000억불
1997년 IMF 체제
2003년 FTA 시대 개막
2011년 무역 1조불
2020년 수출 6000억불


▲1964년 수출 1억불 달성 기념으로 제정된 제1회 무역의 날을 축하하는 한천수출조합의 현수막이 걸려 있다. 
한천은 우뭇가사리의 열수추출액의 응고물인 우무를 얼려 말린 해조가공품으로 당시엔 주력 수출품 중 하나였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박정희 “경제자립 위해 수출 증진해야”

박정희 대통령의 축사는 대한민국 연간 수출액이 1억 달러를 넘었고 10억 달러에 육박한 1960년대와 중화학공업 체제로의 산업구조 변화를 통해 급성장한 1970년대로 구분해 봐야 한다.

1964년 하인리히 뤼프케 서독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때문에 1회 수출의 날 행사장에 참석하지 못한 박정희 대통령은 장기영 부총리가 대독한 축사를 통해 “오늘 평소에 우리들의 숙원이던 억대 수출의 달성을 보게 됨에 즈음하여, 나는 수출증진이라는 국가 지상의 과제를 이룩하기 위하여 제일선에서 애써 노력한 수출업자와 생산업자 여러분은 물론, 온 국민 여러분과 더불어 충심으로 기뻐해 마지않는 바입니다”라고 기쁨을 대변했다. 

1967년 4회 축사는 대한민국 경제의 자립을 위해 달성해야 할 연간 수출 규모의 고민 결과 10억 달러라는 수치를 도출했고, 1968년 5회 축사에서는 대한민국 수출의 나아갈 길로 ▷산업계 시설의 현대화 ▷경영관리 개선 ▷품질 좋고 값싼 제품 개발 ▷대규모 양산체제 구축 ▷시장개척 노력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1970년대는 대한민국 경제가 커다란 시련기를 겪으면서도 도전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찬란한 성장을 구가했다. 박 대통령은 1972년 9회 행사에서 “1980년대 초까지 100억 불을 수출하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다. 

1974년 11회 행사 때에는 당시 남북 간 대화가 원활하게 전개되지 않고 있던 상황을 반영해 “우리의 국력이 막강해질 때 한반도의 전쟁 재발도 미연에 방지되고,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성실한 태도로 남북 대화에 임해 올 것이며, 또한 민족적 숙원인 평화 통일의 길도 열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76년 13회 수출의 날 치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기업인들이 근로자의 처우 개선과 복지향상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라며 처음으로 노사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1977년 14회 수출의 날은 연간 수출 1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100억 불 수출은 비단 물량의 크기에서뿐만 아니라, 겨레의 무한한 저력과 가능성을 과시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의와 보람이 있다고 믿는다”고 의의를 설명했다. 1978년 15회 행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참석한 자리였다. 

그는 “우리가 항상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장벽은 비단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에, 우리들 마음속에 도사리는 자만과 안일과 방심”이라면서, “이를 스스로 억세게 극복하지 못한다면 밖으로부터의 모진 도전과 시련을 이겨내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중단없는 수출 개척 노력을 당부했다.

1979년 16회 수출의 날은 ‘10·26사태’ 직후 사회 혼란 속에 치러졌다. 최규하 대통령은 “인구에 비해 국토가 협소하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실정에 비추어 수출증대 등을 주축으로 하는 대외 지향의 개발정책을 계속 추진해 나가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두환 “민간 주도 자유시장경제 추구”

대한민국은 1986년 건국 이래 최초로 31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달성, 흑자 시대를 열었다. 국제원유가 급락, 원화 약세, 국제금리 하락 등 소위 ‘3저 현상’의 덕을 톡톡히 봤다. 1980년 17회 수출의 날 처음으로 축사를 한 전두환 대통령은 “정부는 앞으로 경제운용을 경쟁과 개방을 토대로 한 민간 주도의 자유시장경제를 추구해 갈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1980년대 중반에는 연간 수출 500억 달러 이상을 실현하자고 당부했다.

1981년은 대한민국 수출액이 200억 달러를 돌파했다. 그해 열린 18회 수출의 날에서 전 대통령은 “기술 집약산업을 수출 주력 산업으로 더욱 알차게 육성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뒤떨어진 부품공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3년 20회 수출의 날을 두 달여 앞두고 대한민국은 ‘버마암살사태’를 겪었다. 전 대통령은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세력의 공격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악랄해졌다. 평화파괴 국가의 반이성적 만행과 더불어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야만적인 북한 공산집단의 폭력살인 만행이 바로 그것”이라면서, “그러나 우리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우리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한 이 숭고한 노력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1985년 22회 수출의 날에는 수입대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수출상품을 만들기 위해 수입하는 자재와 부품을 국산으로 대체해 나간다면 직접적인 수입 절감은 물론이고 수출의 외형적 신장과 함께 부가가치를 높여 줌으로써 국제수지 개선과 외채 절감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1986년은 건국 이래 최초의 무역수지 흑자를 자축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이 때 행사명도 무역의 날로 바뀌었다. 

그해 23회 행사에서 전 대통령은 “우리는 올해 들어 마침내, 건국 이래 줄곧 시달려온 만성적인 국제수지적자에서 벗어나, 우리의 지혜와 땀으로 흑자경제의 달성이라는 신화를 창조해냈다”고 자평했다. 1987년 열린 24회 무역의 날 그는 마지막 축사를 통해 “수출산업의 구조를 고도화하는 노력과 함께 어떤 상품도, 어떤 나라건, 어떤 때든지 공급할 수 있는 전천후 무역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세계 12위 무역국으로 부상한 1988년 제25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이 축사를 하고 있다. 【사진=국가기록원 제공】

◆노태우 “무역은 번영 키워갈 유일한 길”

노태우 대통령 시기의 대한민국 수출은 3저 현상에 따른 무역흑자 시대의 짧은 도래에도 불구하고 88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따른 국격 향상, 고부가가치 제품 수출 증가, 공산주의 국가들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에 따른 수출국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대한민국 수출은 607억 달러로 전년 400억 달러에서 1년 만에 100억 달러 넘는 신장세를 실현했다. 그해 25회 무역의 날에서 노태우 대통령은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12위의 무역국으로 부상함과 동시에 선진산업사회의 문턱에 진입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무역흑자 기반이 정착됨으로써 자립경제의 터전이 다져지고 두 자리 숫자의 높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무역적자로 돌아선 1990년 27회 무역의 날 노 대통령은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회도, 진정한 민주주의도… 분단된 이 나라의 통일도 경제력의 바탕 없이 이룰 수 없다”면서, “이 모든 우리의 바람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1990년대 중반까지 우리는 국민 소득 1만 달러, 무역 2000억 달러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무역의 성장은 우리의 번영을 줄기차게 키워 갈 유일한 길이다”고 강조했다.

1992년은 정부의 강력한 조치로 무역적자가 약 51억 달러로 축소됐다. 자신감을 얻은 노태우 대통령은 29회 행사 축사에서 “우리의 경쟁 대상은 개발도상국이 아니라 선진국이다. 낮은 임금, 저급 노동, 값싼 상품으로 수출을 늘리던 시대는 지났다. 우리 기업은 기술과 품질에 바탕을 두고 고급, 고품질, 고부가가치의 제품을 만들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김영삼 “세계화로 국가경쟁력 강화”

김영삼 대통령 시기의 대한민국 무역은 ‘암흑기’라 불린다. 연간 수출 1000억 달러 달성이라는 기념비를 세웠으나, 수출이 늘면서 원자재 부담도 상승해 집권 5년간 연간 최대 무역적자 규모를 두 번이나 경신했다. 나아가 동남아시아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아 국가 부도의 위기로 몰린 대한민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과 구제금융 요청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994년 31회 행사 축사에서는 김영삼 정부를 상징하는 단어인 ‘세계화’가 등장했다. 김 대통령은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경제는 물론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세계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세계화를 위해서는 정부는 물론,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범국민적인 노력이 전개되어야 한다”고 했다. 

1995년 32회 무역의 날 행사는 연간 수출 1000억 달러 달성을 기념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불과 한 세대의 짧은 기간에 수출고를 무려 1200배로 키운 기적 같은 일을 우리 국민이 이루어 냈다”고 자평했다.

1997년 34회 무역의 날 행사는 12월 1일에 열렸다. 김영삼 대통령은 ‘경제 회생을 위한 결의와 다짐’이라는 제목의 축사를 통해 “개발연대부터 누적되어 온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가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와 맞물려 우리의 외환·금융시장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많은 기업이 자금난을 겪고 있으며, 부도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면서, “정부는 IMF와 미국·일본 등 우방들의 도움을 받아 당면한 경제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뒤 정부는 IMF와 구제금융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김대중 “IMF 위기, 도전과 응전으로 극복”

외환위기의 시작과 함께 국정 업무를 시작한 김대중 대통령은 급격한 경제 위축 상황 속에서 국가 구조개혁을 단기간에 마무리하고 IMF 구제금융 체제를 조기에 졸업했다. 특히, 1998년은 대한민국 무역흑자 기조 안착이 본격화하는 해로 기록되었다.

21세기를 눈앞에 둔 1999년 36회 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무역의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전자상거래를 포함한 ‘사이버 무역’에 대비 ▷한편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존공영을 위한 협력을 모색하는 21세기 세계시장에 적극 대응 ▷고부가가치 지식집약형 상품 수출에 전력 등을 제시했다.

2000년 37회 행사에서는 수출증대를 위해 “전통산업을 고부가가치화하면서 정보산업(IT)과 생물산업(BT) 등 지식기반산업을 삼위일체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했다. 무역의 날 대통령 축사에서 정보산업과 생물산업 단어가 언급된 것은 처음이다.

2001년 38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중국’을 화두로 내세웠다. 그는 “중국 경제는 2020년까지 세계 3위의 경제 대국을 목표로 하고 있는 거대시장이다”라면서, “중국의 WTO(세계무역기구) 가입과 함께 이루어질 시장개방으로 연간 11억 달러가 넘는 대중무역수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2002년은 한?일 월드컵을 개최한 해였다. 39회 행사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IMF 관리체제로 시작한 지난 5년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다. 그야말로 도전과 응전의 연속이었다”면서, “이제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세계 일류국가를 향해 나아가자. 고품질과 신시장 개척을 통해 2010년 무역 규모 6천억 달러의 세계무역 8강으로 도약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노무현 “수출 온기가 전 구석에 퍼져나가야”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는 다자간 무역 통상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 논의의 본격화와 더불어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 활발히 이뤄졌다. 대한민국도 2003년 칠레와의 FTA가 정식 발효해 FTA 시대의 막을 올렸다.

2003년 4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내년에는 대망의 수출 2000억 달러 시대가 열린다”면서, “국민 소득 2만 달러 실현에도 무역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수출이 지금보다 두 배로 늘어나 4000억 달러가 되어야겠다”는 ‘2010년 국민 소득 2만 달러, 수출 4000억 달러 시대’를 제안했다. 

2004년 41회 무역의 날에는 4000억 달러 시대 도래를 위해 ‘혁신’을 이뤄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2005년 42회 무역의 날 축사에서 노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철학인 ‘상생협력’을 언급했다. 그는 “수출의 온기가 우리 경제의 구석구석에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을 강화하고, 부품, 소재산업을 더욱 육성해서 수출과 내수 부문이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8년 44회 행사 축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경제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10월 2~4일 평양에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회담을 진행했다. 그는 “남북관계가 잘 풀리면 우리 경제가 또 한 번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리고 장기적으로 봤을 때 미래의 우리 우환을 해소할 수 있는 것 아니냐, 그래서 이것은 어차피 가야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1년 12월 12일 코엑스에서 열린 ‘무역 1조 달러 달성 기념 
제48회 무역의날’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이명박 “2020년 무역 2조 달러 시대 열자”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에 가장 큰 사건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발이었다. 21세기 들어 우상향 곡선을 그리던 경제지표들은 급락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고, 수출도 바로 회복해 무역 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2009년 46회 행사에서 이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화두로 제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다가오는 현실”이라면서 정부와 기업이 함께 대처해 나가자고 당부했다. 

2010년 47회 행사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급변하는 세계 무역환경을 극복하자면 새로운 무역정책을 적극 모색해야 할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신흥시장 진출 ▷중소기업의 글로벌화 ▷FTA 시대 적극적인 대응 등 세 가지를 제시했다.

2011년 48회 행사는 연간 무역 1조 달러 달성을 차축 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어떤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도약해왔다”면서, “우리는 무역 1조 달러를 넘어 2020년 무역 2조 달러 시대를 열어야 하고, 또 열 수 있다”고 전했다. 

2012년 49회 무역의 날 축사에서는 이탈리아가 화제어로 눈길을 끌었다.“20여 년 전 ‘2020년까지 장기국가발전전략’을 세울 때 이탈리아는 우리가 넘어야 할 꿈의 목표로 세웠다. 특히 지난 2009년에는 2014년까지 무역 8강 이탈리아를 넘어설 목표를 세웠고, 그보다 2년 앞서 금년에 우리는 마침내 그 고지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무역 1조 달러를 유지했지만 세계경기 침체와 함께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내 정치적 
혼란 등으로 수출입 모두 감소세로 돌아섰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제51회 무역의 날 기념식을 마친 후 퇴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근혜 “‘제2의 무역 입국’ 실현해야”

박근혜 대통령 재임을 전후로 대한민국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무역 1조 달러를 유지했다. 그러나 세계경기 침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따른 국내 정치적 혼란 등으로 수출입 모두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3년 50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 박 대통령은 ‘제2의 무역 입국’을 선언했다. 박 대통령은 “2020년 세계무역 5강, 무역 2조 달러 달성을 목표로, 새로운 수출산업 육성과 중소?중견기업의 수출 역량 제고, 세일즈 외교와 자유무역 기반 강화라는 3대 과제를 적극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2014년 51회 행사에서는 ‘제2의 무역 입국’ 실현을 위해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5년 52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는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기 위해 한국무역이 가야 할 길로 ▷새로운 수출 지역과 품목 발굴해 수출 다변화 ▷중소·중견기업을 수출의 중요한 축으로 성장 ▷주력 산업의 근본적인 경쟁력 강화를 제시했다.

2016년은 황교안 국무총리가 53회 축사를 했다. 황교안 총리는 “우리는 지금의 어려움을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더 높이 날아올라야 한다”면서, “그동안 수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경제 기적을 이룩한 우리 국민, 우리 기업의 저력을 하나로 모아 무역 대국의 큰길로 함께 나아가자”고 당부했다.

◆문재인 “포용적 성장 통해 혜택 모두 누려야”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2017년부터 세계무역은 유가 변동성의 영향으로 호황과 부진이 반복됐다. 무엇보다 2020년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은 코로나19 팬데믹은 발발은 전 세계 교역 중단 사태로 몰아넣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4회 무역의 날 축사를 통해 ‘사람 중심 경제’로의 경제 패러다임 전환을 촉구했다. 이를 위해▷수출을 통한 더 많은 일자리 창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는 수출산업 고도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상생협력 무역 등 세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연간 수출 6000억 달러를 돌파한 2018년 55회 무역의 날 기념식에서는 ‘포용적 성장’을 언급했다. 

그는 “포용적 성장과 포용국가의 비전은 세계가 함께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해법이다. 공정한 경제를 기반으로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을 이루어야 수출과 성장의 혜택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갈 수 있다”고 역설했다.

2019년 56회 행사에서는 무역 시장 다변화 계획 등을 비중 있게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최대 규모 다자 FTA인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인도네시아와의 CEPA(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와 함께 말레이시아, 필리핀, 러시아, 우즈베키스탄과 양자 FTA를 확대하여, 신남방, 신북방을 잇는 성장 기반을 구축하겠다”면서, “남미공동시장인 메르코수르와의 FTA 협상에도 속도를 내어, 우리의 FTA 네트워크를 세계 GDP의 77%에서 2022년까지 90%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했다.

코로나19로 점철된 2020년 열린 57회 무역의 날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코로나 이후 회복되는 세계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모든 나라가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한발 앞서 변화에 대비하고, 코로나 이후 시대의 새로운 도전에 실력으로 당당하게 맞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한민국 무역의 체력을 더욱 튼튼하게 키우고 ▷대한민국 무역의 체질을 환경친화적으로 바꾸며 ▷디지털 무역에 대한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고 전했다.

[한국무역신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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